한살림서울 소식지, 한살림사람들 2013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한살림은 선한 농부로 살아온 세월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곳

 글 이미경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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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따라 장맛비와 폭염 소식이 교차하는 요즘, 그 누구보다 근심과 노고에 힘겨울 생산자조합원들을 떠올리며 길을 나섰다. 가는 내내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장맛비의 심술에도 아랑곳없이 강원도 옥수수밭의 꼿꼿한 행렬이 기분 좋은 만남을 예감케 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얼른 알아보고 손짓하며 맞아주는 정겨움이라니…!

“사십 년 전 맨주먹으로 이곳에 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모두 한살림 덕분이에요.”

당시 20두의 소를 먹이며 농사를 지은 까닭에 김종호 생산자는 화학비료 대신 풍족한 퇴비로 농작물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원주에는 새벽시장이 열리는데, 여기에 내다 팔던 김종호 생산자의 열무며 상추가 쉬 무르지 않는 것을 보고 한살림원주 관계자가 수소문하여 김종호 생산자를 찾아왔던 것. 한살림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생명농업’에 대해 보고 듣고 배우며 차차 한살림의 이념도 알아가게 되었다.

예순아홉 해를 살아오고 한살림과 십팔 년을 같이하며 어찌 고비나 갈등이 없었을까.

“특별히 없었어요. 난 농업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초창기에 돈 안 되고 힘만 드는 친환경 농사를 굳이 왜 하냐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저를 무척 부러워해요.”

주위의 농가들은 새벽 5시부터 3시간 동안만 반짝 열리는 원주 새벽시장에 참가하려고 매일 같이 새벽 2시부터 줄을 서고 다 못 팔고 남은 것은 일반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단다. 그러니 애써 농사지은 만큼 보상받는 한살림 생산자를 부러워할 수밖에….

더군다나 얼마 전에는 원주 제천 간 철도 공사 때문에 땅이 수용되면서 보상을 받게 되었는데, 한살림 생산자라 모든 생산 이력이 빠짐없이 남아있어 땅이 헐값에 넘겨지는 억울함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한살림 안에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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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만큼 선하고 다정한 김종호, 주순예 생산자 부부

 

김종호 생산자에게 농사의 원칙을 물으니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대로 가자’ 일 뿐이란다. 자연의 순리대로 작물이 자라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묵묵히 건강한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자세로 임한다는 것. 현재는 지렁이 분변토와 볏짚을 사용하여 옥수수, 토마토, 애호박을 주로 기르고 있는데, 옥수수는 한그루에 한 개씩만 수확하니 예상량에서 못 미칠 때가 많다고 한다. 올해도 한 망에 다섯 개씩 천오백 망을 어림잡았으나 천 망에서 그칠 것 같단다. 연이은 장마에 토마토도 열과(裂果)가 많아 손해가 크고, 애호박은 한 봉지에 두 개씩 만 오백 봉지가 목표다.

작물마다 이렇게 다 제각각인데 애달아 하지 않는 것은 ‘농사는 하늘이 먹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부족하면 다음을 기약하고 남으면 남은 대로 이웃과 나누어 먹지 절대 딴 곳에 팔지 않는다고 한다. 돈이 될 수도 있는데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아니 뭐 그냥 나눠 먹지 팔러 갈 시간도 없다”고 아내가 대답하자, 김종호 생산자는 한술 더 떠 “이것이 우리만의 차별화여!” 한다. 천생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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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없던 것이 돋아나 있고, 또 다음날은 더 야무지게 뿌리내린 것들을 보는 신기한 경험만으로 족하다. 이웃들이 혹은 도시의 자식들이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느냐”고 칭찬 한마디 해주는 것이 돈과도 견줄 수 없는 보상이고 보람이란다.

김종호 생산자는 이런 크고 작은 보람들이 농사를 그만둘 때까지 이어지길 바란다며, 생산자들이 힘을 모아 노령으로 더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때를 대비해서 ‘생산자 연금제도’를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생계유지하고 자식들 교육시키고 나면 노후에 일손을 놓았을 때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 늘 푸른 집’을 중심으로 야트막한 비탈 위에 옥수수밭 빗소리가 더욱 명랑하다. 그 옆에 나란히 연둣빛 종아리가 발랄한 애호박이 줄줄이 매달려있고 붉을 대로 붉어진 토마토가 지천이다.

“잘 자란 작물은 모두가 광이 나요.”

색과 향과 윤기가 흐르는 것이 어찌 저절로 만들어졌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