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서울 소식지, 한살림사람들 124호(2012년 4월)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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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의 밥상을 소비자의 밥상으로

주로 잡곡과 채소의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쉴 틈이 없는 산들바다공동체. 그 중 오늘의 주인공은 80년대 농민운동, 90년대 한울생협 활동에 이어 2004년 결성된 산들바다공동체 원년 멤버인 조찬준 생산자다. 이력이 보여주듯 여태껏 농사꾼으로 살아왔으며 현재 약 5만m2의 농토를 일구고 있다.

“이 집은 비닐도 절대 안 깔고 맨밭에다 농사지어.”

냉이손질하는 작업의 일손을 돕던 마을 할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에서 신뢰가 묻어난다. 마늘 밭에서 캐왔다는 냉이는 흙을 털고 잔뿌리와 잎을 다듬느라 바쁜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작업속도는 더디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조금이라도 시들까 하우스 밖으로 옮겨놓는 등 신경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까운 들에서도 십여가지 품종을 찾아 볼 수 있다는 냉이는 캐서 다듬는 마무리 작업이 더 힘들어 보였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농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수천 년의 유기농을 단시간에 말아먹어 버렸으니 지금의 여러 가지 자연농법이란 것도 조상이 하던 대로 하는 것이고 내 몸도, 농사도 ‘냅두는 것’을 좋아해서 머리카락도 수염도 자라는 대로 두고 땅에 씨 뿌리고 기다리는 것일 뿐이지, 뭐 특별한 농사철학 같은 것 없어요.”

 

몸도, 농사도 ‘냅두는 것’이 좋아

긴 수염에 묶어올린 긴 머리의 보임새를 고집하고 있는 남다른 이유와 농사법 설명도 간단명료했다. 그러나 농사란 것이 말처럼 ‘냅두어도 되는’ 그리 쉽고 만만한 것인가. 오염된 공기와 흙, 시시때때로 세를 넓혀오는 잡풀과의 전쟁을 마다않고 무(無) 멀칭(mulch film)농법을 과감히 도전, 실행하고 있는 뚝심 센 생산자의 농사법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십년 전 무경운 농법으로 칠팔년간 농사를 지었던 경험과 자연자재인 짚, 낙엽, 채소 다듬고 난 잔뿌리 하나까지 모아둔 집진(集塵)을 덮개로 하는 지금의 농사법이란 숨 막히는 비닐막을 대신한 몇 가지 자연자재만으로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산자 집 안팎 군데군데 자리한 커다란 액비통과 거름더미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엽토와 현미밥, 해묵은 바다 속 개흙을 퍼다 넣은발효액비는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작물에 영양을 더해준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보름 정도, 여름에는 일주일이면 훌륭한 액비로 탈바꿈한다. 1,000배 희석한 순수유황과 석회는 균류병에 강하고 자연농약이라 불리는 유채기름 희석액은 과일과 채소의 전착제(展着劑) 역할로 진딧물과 흰가루병을 잡는다. 화학비료에 비해 생산비가 절감되는 쌀겨와 깻묵 발효 거름은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들을 먹고 자라는 농작물은 어떤 모습일까. 가까운 마늘밭과 시금치, 냉이밭을 둘러보았다. 땅은 부드럽고 폭신했다. 공급 시기에 맞춰 파종일자를 달리한 시금치는 낮게 혹은 한 뼘씩은 자라나 찬바람과 맞서고 있었다. 검푸르고 통통한 것이 데치면 질기디 질긴 섬유질로 입안을 겉도는 것들과 달리 본연의 식감을 떠올리게 했다. 마늘밭에서 어울려 자라난 냉이는 더 크게 자라면서도 꽃도 늦게 피어 수확 시기를 늦출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자연자재 멀칭은 땅심 돋우기에도 좋고 보온효과도 있어 겨울날에도 마르지 않는다. 이는 잎이 더 싱싱하다는 뜻이다.

“자꾸 심어먹으니까 자연에 가까운 양분을 조금 보충해줄 뿐 내버려두면 농사꾼도 편하고 땅도 편해요. 공동체사람들 다 전문가지만 결국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죠.”

 

일상도 온통 ‘무위자연’

부창부수랄까, 아내 이성임 생산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전했다.

“고생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무멀칭 농사기술도 늘고 좋은 점도 많다는 걸 느껴요. 골치 아픈 폐비닐과 씨름할 일도 없지, 땅도 덜 다져지지, 인건비도 절약할 수 있어서 생산량이 다소 적더라도 따지고 보면 그게 그거데요. 우리집 것은 흙이 더 묻으니 보기는 안 좋아도 맛은 좋죠” 흙에 대한 속 깊은 이해와 배려가 우선인 그들이 길어 올리는 생명 이야기는 소박했다.

조찬준·이성임 생산자 부부는 농사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자연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삼년 동안 쉬엄쉬엄 지었다는 투박한 자재와 솜씨가 어우러진 황토방이며 생태화장실, 하루의 고단함을 누이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 옆에 또다시 자연물로 돌아갈 것이 머무는 뒷간의 침묵이 잠시 봄볕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