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진호공동체 – 조봉희·강용선 생산자

딸기는 열세 달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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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이쯤이 가장 맛있단다. 조봉희 씨는 쭈그려 앉아 하는 일이 많아 힘들다면서도 딸기밭에 앉으니 얼굴이 환해졌다

 

 

1년이 13개월이라면? 지금 이 순간을 길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숨을 내쉴 일이겠다.
흔히 “딸기는 13개월 농사”라고 한다. 여기에서 13개월은 농사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보통 매년 5월이면 딸기 수확이 끝나는데 이듬해 심을 모종 준비를 3월에는 시작해야 한다.
말만 들어도 쉽지 않을 것만 같은데 충남 부여군 초촌면 진호공동체 조봉희·강용선 씨는 딸기농사를 짓고 있어 행복하단다.

 

 

농사로 번 돈 전부 병원에 갖다 준다

워낙 한살림 딸기를 좋아해, 농부들이 힘들다고만 할까봐 조마조마했다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봉희 씨의 손가락을 보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퉁퉁 부은 그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은 마디가 안쪽으로 돌아서 꺾여 있었다. 15년 동안 유기 딸기농사를 지은 흔적이었다. 훈장이라고 표현하면 지난 힘든 시간들이 묻히는 것 같아 부족하고, 상처라고 하기엔 농사지으면서 얻었던 기쁨이 표현되지 않아 모자라다.
남편 강용선 씨는 척추관 협착증 때문에 다리가 마비되어 지난해 수술을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안 아픈 곳이 없고, 진통제 먹고 주사 맞고 버티며” 농사를 짓고 있다.
 
가족끼리는 농으로 “딸기농사 지으면 돈 벌어서 병원에 다 준다”고 말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에게 “일을 줄여야 낫는데 이렇게 실컷 일하고 오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호통을 듣지만, 2천975㎡(900평)에 지은 비닐집 다섯 동의 딸기를 돌보느라 도저히 일을 줄일 수가 없다.

“쭈그려 앉아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딸기농사는 매우 고되어요. 그렇지만 세상 어떤 일이 안 힘들겠어요?”

라고 말하는 품새나, 관절염 앓는 손을 내밀며

“내가 손이 쪼그맣잖아요. 그래서 날아다녀요. 손이 느린 사람은 딸기농사 못 지어요”

라고 말하는 게 참 소박하고 낙천적으로 보였다. 조봉희 씨는 19살 되던 해 논산시 은진면에서 이 마을로 와 여덟 살 손위인 강용선 씨와 결혼했다. 강용선 씨 어머니 이쌍순 씨는 ‘며느리 자리’를 알아보러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조봉희 씨를 소개받았다.
 
딸이 없어 대신 딸처럼 지낼 며느리를 찾았는데 그간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한눈에 조봉희 씨의 “야물고 예쁜 입술이 마음에 들어” 아들과 만나게 했고 금세 결혼이 성사되었다. 조봉희 씨가 오기 얼마 전 강용선 씨 집에서는 복숭아로 농사 품목을 바꾸었다. 조봉희 씨는 어릴 적 복숭아농사를 도우며 익혔던 눈썰미로 야물게 농사를 지었다.

 

 

야물고 깔끔하고 부지런하고 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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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이 바빠도 메주 띄워 간장, 된장 만들고 고추장도 직접 담는다. 농사지은 콩으로 쑤어 만든 두부와 야채들을 넣어 구수하게 된장국을 끓였다. 백김치와 배추김치, 무김치가 아삭하게 입맛을 당겼다. 뚝딱 점심을 차려 먹고 잠시 쉬다가 밭에 나간다

 

장녀였던 조봉희 씨는 ‘집에 입 하나 덜어 주려는’ 마음에 일찍 결혼했지만, 갓 스물에 시작한 ‘시집살이’가 쉽지는 않았다. 다섯 형제 중에 장남인 강용선 씨의 넷째 남동생이 당시에 막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통학하려면 오전 7시에는 집에서 나서야 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밥을 차려야 하는데 못 일어날까봐 긴장한 새 신부는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란다. 오죽하면 한번은 자다가 눈을 떴는데 시계가 ‘6시 5분’을 가리켜 소스라치게 놀라 부엌에 들어갔는데,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를 듣고 나온 시어머니가 “왜 지금 밥을 준비하느냐?”고 물어서 시계를 봤더니 오전 ‘1시 30분’이었던 적도 있다. 신경에 날이 섰던 탓에 시계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그때 “잘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조봉희 씨는 지금도 뭐든 “잘하고 싶다”. 무엇보다 성품이 부지런하다. 틈나는 대로 청소하고 정리하는 그를 식구들은 ‘깔끔쟁이’라 부르고 스스로는 극성맞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사이 진호공동체 여성생산자 대표 역할도 한다.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는 농사일도 고될 텐데 새벽마다 반신욕을 하고, 매일 밤마다 이웃들과 만나 운동 겸 동네 산책을 한다. 낮에는 생활에 필요한 일을 한다면, 아침과 저녁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서다. 매일 밤 동네 산책을 시작한 지 15년이 되었는데 처음에 예닐곱 명이었던 사람이 이제 세 명으로 줄었다. 저녁마다 만나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걷는 코스도 있다. 걸으면서 수다를 떠는데,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미가 있단다. 무슨 이야기를 하냐고 물으니 “힘든 일도 이야기하고, 시어머니 숭도 보고, 남편 숭도 보고”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맞은편에 앉은 시어머니도 웃으면서 “사람 본능이 다 그런 거 아녀? 욕하면서 스트레스도 푸는 거지”라며 호탕하게 대꾸하는 걸 보니, 지난 세월 동안 서로에게 쌓은 신뢰가 적잖은 모양이다.

 

조봉희 씨는 틈이 날 때마다 간장·된장·고추장 같은 온갖 장도 담그고, 들깨농사 지은 것으로 들기름도 낸다. 가족에게는 물론 동네에도 인정받는 음식솜씨 덕분에 마을에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요리를 도맡아한다. 요리 잘하는 비법을 물으니 “글쎄요. 그냥 ‘비비비비’ 담그는 게 맛있다네요”라고 대답하지만 뭔가 있는 것 같다. 딸기잼을 만드는 것만 봐도 그렇다. 크기가 작아서 출하하지 못하는 딸기는 모았다가 한철 딸기잼을 만드는데 손길이 세심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약간 까맣게 변해서 고민하다가 레몬을 즙내서 넣었는데 그러자 색깔도 빨갛게 유지되고 방부 효과도 있었다. 딸기 10㎏에 레몬 1ℓ정도 비율로 넣는데, 잼이 완성되고 불을 끄기 직전에 넣는다. 치즈를 만들 때 변색을 막으려고 레몬즙을 넣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가 사는 진호리가 농촌녹색마을로 지정되어 ‘친환경까치마을’이라는 상표를 얻어 그곳을 통해 딸기잼을 파는데, 인기가 좋아 딸기잼을 판 돈만으로 차를 샀을 정도로 재미가 쏠쏠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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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크게 쓰는 일을 강용선 씨가 맡아 한다면, 자잘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조봉희 씨가 담당한다. 두 사람의 정성을 알고 딸기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커터칼로 철사를 자르고

벼농사에서 복숭아농사를 거쳐서 포도농사를 짓던 집에서 딸기농사를 시작하게 된 데는 조봉희 씨의 역할이 컸다. 2000년 인근 신안리 소부리공동체에서 유기 딸기농사를 짓는 강수옥 씨가 진호리에 왔다. “유기 딸기농사를 지어서 한살림에 내면, 일은 힘들어도 훨씬 생활이 안정된다”면서 교육을 받으라고 권했다. 당시 포도농사를 5년째 짓고 있었는데 한 해 500~600만 원을 겨우 벌었다. 그 이전에는 23마리 소를 먹이다가 사료값이 올라 헐값에 소를 판 적도 있었다. 1남 2녀 자녀를 키우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전부 식구가 6명이나 되는데 수입이 넉넉하지 않았다. 또 유기농을 하면 좋은 먹거리를 생산할 뿐 아니라 땅도 건강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썩은 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모저도 따져도 유기딸기농사로 바꿔야 할 텐데 5년이나 기른 포도나무가 아까웠다. 모종 비용이나 포도나무를 지지하기 위한 지지대 설치 비용 등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이 딸기농사를 짓고 싶어 하면서도 포도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거예요. 내가 일을 저질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톱을 가지고 와서 나무를 자르고, 커터칼을 들고 철사를 잘랐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너 자신 있냐’고 물어요. 그래서 ‘지금 이거 하듯이 하면, 죽기 살기로 하면 뭘 못하겠냐’고 말했죠. 내가 먼저 자르고 있으니까 남편이 같이 자르기 시작하더라고요. 막상 딸기농사를 시작하면서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듣던 대로 딸기농사를 하면서 무엇보다 생활이 안정되었다. 자녀들을 키우고 먹고사는 데 부족하지 않게 되었다.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이 봄에 아이들을 데리고 딸기농사를 체험하러 와서 감사하다고 말하거나 전화나 문자를 주면 보람도 느낀다. 특히 아토피가 심한 아이가 유기농 딸기를 먹고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감회가 새로웠다.

유기농사를 지으니 많이들 쓰는 지베린이라는 성장촉진제를 넣지 않아 딸기 색깔도 선홍색이 아니라 선명한 빨간색을 띄고 단단하고 실해서 물크덩 물크덩 거리지 않고 씹는 맛이 있다. 또 지렁이나 땅강아지나 미생물이 땅속에서 배설도 하고 흙을 들쑤셔 산소 공급을 해 줘 나무가 건강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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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빨간 과실은 물론 끝이 톱니바퀴 모양인 이파리도 예쁘고 순백색 작은 꽃도 사랑스럽다. 비닐집 안에 벌통을 들여 자연 수정을 한다

 

 

점박이응애·흰가룻병·잿빛곰팡이병·외향병 잡기

조봉희 씨는 딸기와 농사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과실 색이 예뻐서 밭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또 손 댄 만큼 예쁘게 자라는 게 눈에 보이는 데다 농사를 지으면서 따 먹을 수 있어 좋다는 것. 물론 탐스럽고 예쁜 딸기는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한쪽 귀퉁이가 무르거나 썩어 출하하지 못하는 딸기를 베어 문다. 그렇게 애쓴 덕분에 2013~2014년에는 한살림 전체 딸기 생산자 중에 가장 많은 양을 냈다.

 

딸기는 손이 많이 간다. 병충해도 많이 입는다. 총채벌레는 빨갛고 탐스러운 부분을 다 긁어 먹어서 딸기가 노랗고 퍼석해진다. 점박이응애가 생기면 잎에 하얀색 작은 반점이 나타나고 엽록소가 파괴되어 누렇게 변하며 말라 죽는다. 또 탄저병이 생기면 뿌리에서부터 까맣게 먹어 들어가면서 잎이 시들어 죽는다. 흰가룻병이 진행되면 회백색의 곰팡이가 핀다.
잿빛곰팡이병은 춥고 습한 환경에서 생기는데 처음엔 꽃받침에 적색 반점이 나타났다가 전체로 번지고 과일이 무르고 썩는다. 외향병은 세 개씩 나는 딸기잎 중 하나가 기형인 상태인데, 이 병에 걸리면 전부 뽑아버리는 게 좋다. 벌레는 직접 잡고 병충해 있는 나무에는 적당한 처치를 하는데, 얼핏 보면 잘 안 보여서 허리를 숙이고 가까이 보면서 뒤적뒤적해야 한다.
 
친환경약재가 나오기 전에는 제충구와 한약재를 이용해 직접 천연살충제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보통 진딧물을 잡으려 담배훈증을 하고 흰가룻병을 잡으려고 유황훈증을 한다. 쥐나 두더지나 새도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실하고 좋은 딸기만 먹는 바람에 여간 속이 상한 게 아니다.
조봉희 씨를 따라 들어간 딸기밭에는 딸기가 달달한 향기를 피워 내며 그야말로 빨갛게 윤기 나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 정말 이름처럼 ‘눈 속에서 봄의 향’을 피워내는 듯했다. 한입 베어 무니 입 속에 봄이 왔다. 그러느라 딸기도, 농부도 고생이 많았다. 조봉희 씨가 생각하는 농부는 이런 거다.

 

“농부는 희생자인 것 같아요. 농작물을 위해 희생하는 희생자. 자식처럼 관심을 많이 두고 누가 뜯어먹는지 수시로 살피고 모든 생활을 농사 중심으로 맞추고. 만약 벌레가 뜯어먹으면 어루만지면서 ‘아프겠구나. 빨리 나아서 건강해지렴’ 이렇게 말을 걸어요. 나요? 나는 딸기를 위한 희생자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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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막 딸기 육묘장을 설치했다. 딸기 모종이 너무 비싸 올해부터는 직접 자가 육묘를 하려고 한다. 친환경 딸기를 내려면 모종을 키울 때부터 농약도 치지 않고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일이 더 많아지게 생겼다
 
<아래> 비닐집 두 동 딸기를 땄는데 1kg 들이로 120박스가 나왔다. 내일이면 이 딸기를 소비자조합원이 맛볼 수 있으리라. 따고 포장하고 옮기는 과정 내내 딸기가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 조심한다

 

 

살림이야기 제34호 2015. 03 땅땅거리며 살다

글 김세진 편집부 / 사진 류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