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마음 속 고향처럼 기억되고 싶어요
시원한 바람이 불던 날, 이봉규 생산자님의 상냥하고 고운 음성을 떠올리며 홍천으로 향했습니다. 올 여름 유난히 가물었던 기후 탓에 홍천 생산지는 지금 물품 적체와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가뭄 속에서도 꿋꿋이 돋아나는 새순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신다는 이봉규님(홍천연합회 생산자 원용호 총무의 아내). 여성 생산자로서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봅니다.
# 가뭄으로 올해 특히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일손도 부족한데 날씨마저 도와주질 않으니 말이에요.
올 여름은 지금껏 지내온 시기 중에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어떤 작물이든 세 번 파종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콩과 들깨는 얼마 전 모종을 다시 부었어요. 율무 같은 경우는 가뭄에 모두 타 버려서 아예 엎어 버렸어요. 그 자리에 콩나물 콩을 심었는데, 그 싹마저 비둘기가 와서 잡숫고 가 버렸어요. 아유. 누가 콩 세 알 심어서 나눠 먹자고 그랬어요. 세 알 심었으면 걔들이 하나는 남겨주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쩜 그렇게 잘 먹어대는지. 근처 산 속에 밭과 논이 있어요. 밭에서 찰벼를 유기농으로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멧돼지가 와서 밭을 모두 망가뜨리고 갔어요. 그것도 세 번씩이나. 동물들이 피해를 주기도 해요. 시골은 날씨, 동물, 일손부족 모두 걱정이에요.
# 들어보니 출하 작물이 다양한데, 어떤 작물이 있는지 소개 좀 해 주세요.
우리는 정말 작물 수가 많아요. 콩, 들깨, 참깨, 율무, 찰벼, 오이, 알타리, 감자, 중파, 쪽파, 단호박, 파프리카, 울콩 등 다 합치면 20종이 넘어요. 주변에는 날마다 돌봐야 하는 작물을 심고, 그 뒤에는 자주 돌봐주지는 않아도 되는 것을 심어요. 전부 한살림으로 출하하고요. 작물 수가 많아 정말 일이 끝이 없네요. 작년 홍천군에서 제일 일찍 출하하고, 가장 늦게 문 닫은 사람이 아마 저일 거예요. 작년 12월 31일까지 김장용 알타리를 다듬어 놓고, 1월 1일 행사가 있어서 다녀왔지요. 그리고 2월 초순 씀바귀 나갈 때 대비해서 다시 일 시작하는 거예요.
# 이렇게 작물 수가 많으면 일손도 많이 필요할 텐데, 두 분이 어떻게 다 꾸려 가시나요?
동네 어르신들께서 틈 날 때마다 오셔서 거들어 주세요. 젊은 사람이 농사짓기 싫어하는 세상에, 단지 열심히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밭농사는 정말 손이 많이 가요. 농사는요, 진짜 혼자서는 못 해요. 일단, 하늘이 많이 해 주시고,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한살림 농사는 주변이 모두 풀밭이 되잖아요. 처음에는 주변에 서, “너는 농사를 짓는 거니, 풀밭을 만드는 거니”하셨다가, 요새는“쟤는 원래 풀밭에서 잘 해”하세요. 풀이 많이 자라서 풀 매야 한다고 말씀드리면, 예초기로는 하지 말고 부르라고 하세요. 예초기로 풀을 자르고 나면 풀도 스스로 살기 위해 뿌리가 흙 속에 진을 친대요. 그래서 뽑기가 더 힘들어 진다고 자르지 말고 부르라고 하시는 거예요.
# 여성으로서 농사 지으며 사는 삶이 그리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결혼 후 집에서 아이들 기르다가 큰 아이 고등학교 들어갈 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어요. 한살림 농사 한 지는 6년 정도 됐고요. 어떻게 보면, 일이 많긴 정말 많은 것 같긴 해요. 어떤 땐 그냥 안 해 버리고 싶어요. 그런데 한 번 그 끈을 놓고 나면 그냥 밀려나가 버리는 거잖아요.
저는 아들이 둘인데, 어렸을 적부터 저를 도와 일을 많이 했어요. 엄마가 힘든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되니까, 스스로 잘 도와줬죠.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어디 내놓으면‘일 잘 한다’소리를 들어요.
# 농사를 잘 모르고 시작하셨을 때의 에피소드가 있나요?
처음 농사라는 걸 배우러 다녔을 때, 제가 얼마나 황당한 짓을 했는지 몰라요. 아이들 기르다가 너무 심심해서, 고추가 아닌 수박을 덜컥 심었어요. 수박 밭 고랑에 자라난 풀을 매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 호미로 박박 긁어, 부엌에 있는 체를 가지고 나가 풀만 걸러다가 버리고, 버리고 했어요. 그러면 잡초가 안 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다 매기 전에 풀이 또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자란 수박을 팔러 둘째와 함께 경매장엘 갔어요. 장사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나가서 가만히 있었어요. 같이 갔던 작은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수박을 팔러 왔으면, 수박 사세요. 해야지.”그 때 주변 과일가게 분들께서‘아무리 봐도 팔 사람이 못 된다.’하며 팔아주신다고 해서 50통, 100통 이렇게 팔게 된 거예요.
# 농사를 쉬는 겨울에는 어떤 일을 하면서 보내세요?
바쁘게 농사를 짓다가 겨울이 되면 정말 아무 것도 하기가 싫고 완전히 넉다운 돼 버려요. 우리는 겨울에 놀면 병이 나니까. 겨울에 나무 보일러를 때요. 신랑이랑 둘이 같이 나무하러 다녀요. 요새 제가 하나 재주 늘은게 또 있는데, 전통주 막걸리 만드는 거예요. 시어머님이 만드는 엿 술인데, 엿물을 만들어서 술 물로 붓는 거예요. 그런 거 만들어서 어른들 드리면 잘 드시고, 저도 만드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 그동안 조합원을 비롯한 많은 분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면.
지금 적체 작물들이 버려지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데, 아무래도 전부 자연에서 얻는 작물이다 보니 모양은 예쁘지 않은 것이 많아 타 제품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친정에 가면 엄마가 주는 건 예쁘지 않아도 맛이 있잖아요. 그 부분을 한 번만 생각해 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요. 그리고 농촌에 있는 우리들이 늘 힘들고 고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우리 신랑은 작물 심어놓고 는“이야, 예쁘다!”그러면서 일을 하거든요. 우리에겐 고추 줄기, 오이 잎사귀 하나하나 다 정이 가고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오시는 분들이 이런 우리 마음을 공감하신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조합원들이 오셔서 직접 작물을 만져보니 좋고, 매장에서도 그 물품을 봤을 때 반가우면, 우리는 그게 좋아요. 너무 꿈 같은 얘기들을 한 것 같지만, 오신 분들이 돌아가실 때 고향에 왔다 가는 마음이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는 생산지가 된다면 좋겠어요.
한살림성남용인 소식지 좁쌀세알, 2012년 8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원문 출처 : https://issuu.com/hansalimsy/docs/hansalim_sy_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