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공동체 – 최창호·하루타도모미 생산자

기다림이 낳은 계란 한 알, 건강도 한 가득

글 이미경 홍보위원

 

괴산군 문광면 옥성리 마을회관을 지나서 인가도 없는 길을 한참 더 가자 꾹꾹 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느닷없이 신라 ‘계림’이 떠올랐다. 닭 울음소리 나는 곳을 찾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지.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하면서도 이분들 역시 못지않은 이야기의 주인공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무소유를 꿈꾼 부부의 인연
소유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삶, 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건강한 순환농법을 꿈꾸는 남자가 있었다. 신학공부를 하던 남자는 교수님을 통해 이러한 정신을 모토로 하는 ‘야마기시즘’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바다 건너 일본 동경 가정대에 다니던 여자 역시 같은 뜻을 품고 공동체 생활을 하다 1993년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야마기시의 실현지라 부르는 화성시 ‘산안마을’에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95년 신혼 생활을 시작한 최창호(54)・하루타도모미(46) 부부.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양계였다. 야마기시 양계법은 농사와의 순환적 관계를 기본으로, 닭이 태양과 공기, 흙과 더불어 암수 정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햇빛이 잘 들게 뚫린 천장, 신선한 공기가 흘러드는 구조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평사, 청초를 듬뿍 먹이는 양계법은 A4 한 장 크기에서 평생 자라야 하는 공장식 축산에 맞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세 아이의 부모가 되자 공동체에서의 생활에도 회의가 찾아왔다. 서로의 도움으로 살 수는 있으나 독립심을 기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최창호 생산자가 야마기시즘에 매료되어 실천하고 살아 온지 16년만의 일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 한살림 생산자가 되다
그 뒤 야마기시 방식을 양계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한살림 생산자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혹한기나 혹서기에 산란율이 떨어질 때 한살림에도 가끔 유정란을 공급했는데 그때 인연이 시작된 거죠. 한살림 역시 ‘생명살림’이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어 굳이 공동체 생활이 아니더라도 제 뜻대로 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옆에 있던 하루타씨 역시 그때를 회상하며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고 싶었는데 공동체에서는 진로의 선택 폭이 좁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괴산으로 왔고 아이들도 스스로 고민하고 준비해서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6년째 유정란을 공급하는 생산자 부부는 3년 전부터 사료도 Non-GMO로 바꾸었다. 사료 값만 해도 배 이상 비싸고 빚으로 시작한 터라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일반사료는 보통 115일 후면 초란을 낳는데 Non-GMO 사료를 먹이니 140일이 지나서야 알을 낳더라고요. 유전자 조작이나 첨가물 없는 자연스러운 먹이인 만큼, 먹을 만큼 먹고 때가 돼야 자라서 제구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닭이라면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지극히 기본적인 것을 놓쳤죠. 지금은 경험이 쌓이다 보니 초창기보다는 앞당겨졌지만, 일반 사료보다 10일 이상 더 지나야 초란을 낳습니다.” 계사 한편에는 건강 먹이인 풀김치 이타리안그라스를 발효시키는 통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일 년에 27톤 정도 먹일 양을 준비해야 한다니 한가할 틈이 없어보였다.

 

닭을 통해 배운 조화로운 공존의 삶
“공동체나 개인이나 공존하려면 상대가 보여야 합니다. 보려고 해야 하고 자신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 역시 해마다 닭이 보내는 메시지가 달라짐을 느낍니다. 벼슬 색의 변화, 숨소리, 울음소리, 계란 빛깔이나 질감 등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늘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귀 기울이며 기다리다보면 닭들도 어느새 안정적으로 자라고 건강한 알을 낳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이들에게도 늘 귀 기울이고 관심가져줄 뿐, 무엇이 되라고 욕심부렸던 적은 없습니다.”
닭과 함께 조화로운 공존의 삶을 꿈꾼다는 최창호・하루타도모미 부부, 욕심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간다는 원칙이 천생연분답다. “조바심은 물품의 질 저하를 부를 수밖에 없어요. 계란 한 알, 두부 한 모라도 제대로 만들면 소비자는 언제든지 찾아옵니다. 한살림의 소비자 조합원이나 실무자들도 시장논리와 경쟁에 휘둘려 조바심 내기보다 한살림 가치관에 어울리는 물품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저도 한국에 와서 눈물 날 정도로 힘든 적은 있었지만 후회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어요. 한살림에 유정란 공급하며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요즘에는 한국민요도 배우고 영어공부도 하며 지내요. 괴산의 생산자들과도 즐겁게 어울리며 맛있고 안전한 유정란 공급하고 싶어요.” 생산자 부부의 말은 닮은 듯이 나직나직하면서도 울림을 주었다.

 

 

한살림서울 소식지 <한살림사람들> 2015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