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방울 사랑을 먹고 자라는 포도·복숭아

방울방울 사랑을 먹고 자라는

포도, 복숭아

 

울창히 자란 잎사귀들로 그늘막이 서늘한 과수원 안.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생산자의 땀과 하늘이 함께 빚어낸 선물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여물고 있다.

 

 

껍질째 먹으면 더 즐거운 맛, 한살림 포도
바람에 더운기가 빠져버리고, 비온 뒤 하늘도 한껏 청명해졌다. 이른 가을, 경북 상주 화동의 포도는 무르익어 간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야무지게 싼 하얀 봉투를 벗긴 구자희 생산자가 포도 한 송이를 건넨다. 탱탱하고 알차다. 농약 아니냐 오해를 받곤 하지만 달수록 더 많이 묻어 있다는 효모균인 하얀 가루도 그대로다. 한 손에 포도 한 송이를 들고 한 알 한 알 똑똑 따 먹는데, 웬걸, 껍질째 먹는 포도 맛이 이토록 달았나 싶다. 껍질이 톡, 입안에서 작은 폭죽처럼 터지면 첫맛은 새콤, 끝맛은 달콤. 새콤달콤의 정의를 앞으로 포도라 내려야겠다.  한살림에서는 8월, 옥천, 영동의 하우 스캠벨을 시작으로 9월과 10월 영동과 거창, 상주 등에서 나는 노지캠벨, 스튜벤, 연둣빛 청포도 등을 생산한다. 제초제와 성장촉진제 없이 키우며 하우스 재배를 할 때도 가온 없이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대개 포도농사는 1년 동안 자란 포도 나무의 무성한 가지들을 쳐내는 2월부터 시작된다. 3월 한두 차례 거름을 주고 나면 4월, 한껏 땅의 기운을 머금은 포도 순이 하나둘 꽃봉우리 터지듯 돋아난다. 해마다 만나는 포도 순이지만, 이홍재 생산자에게는 늘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예쁘기만 하다. 4월 내 곁순을 따 주고 5월 꽃이 피면, 송이송이 메주콩만한 초록빛 포도열매가 잇따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포도 농사 중 가장 힘들다는 ‘공포의 알 솎기’를 해야 할 때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포도알 솎기는 열매들이 비를 맞아 살을 찌우는 6월에서 7월 사이 한 달 넘게 계속된다. 포도 한 송이마다 알이 적당히 달려야 열매가 서로를 밀지 않고 잘 여물어 좋은 맛이 들기 때문이다. 조금만 시기를 놓쳐도 작업이 걷잡을 수 없이 어렵기 때문에 이때 늑장을 부리다가는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짓고 수확을 코앞에 둔 8월 중순. 종일 날이 흐리고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자 이홍재 생산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비가 오면 포도알이 갈라져 버려요. 아침엔 쨍하니 맑고 밤엔 서늘해야 포도맛이 좋은데…. 비 온 다음 날은 마음속에서 포도알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다음 날 하얀 봉투를 열어 맛본 포도는 다행히 제맛을 찾아가고 있었다. 일주일 후면 입에서 달콤한 싱그러움이 톡 톡 터지는 포도송이들을 조합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폭신한 땅에서 건강하게 자란 한살림 복숭아
보송보송 아기들의 작은 엉덩이를 보면 ‘복숭아’ 생각이 절로 난다. 복스러운 생김새만큼이나 맛이 달고 부드러운 복숭아는 예부터 신선이 먹는 과일이라 하여 ‘선과’라고도 불렸다. 대표적인 여름 과일인 복숭아는 다른 여름 과일들과는 달리 성질이 따뜻해 배앓이가 잦거나 속이 냉한 사람들이 먹기에도 좋다.  복숭아는 세계적으로 3000종이 넘지만 대개 색에 따라 백도와 황도, 껍질에 난 털의 유무에 따라 털이 없는 무모종 복숭아(천도복숭아)와 유모종 복숭아로 나뉜다. 한살림 생산자들은 15~30종의 복숭아를 골고루 심고 7월부터 10월까지 각 시기에 알맞게 익은 복숭아들을 낸다. 한살림 복숭아는 충주, 원주, 옥천, 음성 등 23개 농가에서 생산하는데 그중에서도 충주가 가장 많은 복숭아를 낸다. 20년째 복숭아를 내온 충주공동체 허명회 생산자는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속이 탈 때도 있었지만, 뒤늦은 장맛비로 다행히 맛과 향이 좋은 고운 복숭아를 만났다.

 

복숭아는 농사짓기 참 어려운 작물 중 하나다. 가루깍지벌레, 나무좀, 심식나방 등 다양한 병충해 피해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살림 생산자들은 친환경 자재들로 이런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뿐, 한 번 병충해의 습격을 받으면 손쓸 방법이 많지 않다. 토양소독제나 성장조절제 없이 관행농이나 일반적인 저농약 기준보다 더 엄격한 한살림 기준에 맞는 친환경 자재를 선별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허명희 생산자는 그저 손놓고 보기가 안타까워 고삼 등 천연 재료들을 손수 삶아 묘안이 될 유기농 자재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허명회 생산자는 땅이 살아 있으면, 나무에 병도 덜 생긴다며 1년 내내 좋은 땅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좋은 땅은 밟았을 때 스펀지같이 푹신푹신 해요. 땅에 미생물이 살아 있고, 산소도 잘 공급되고 있다는 증거죠. 땅이 좋으면 뿌리가 건강하잖아요. 열매가 달 수밖에 없죠. 올해는 복숭아 맛이 더 잘 들었어요.”

 

 

 

 

 

대학시절부터 바라왔던 귀농의 꿈을, 18년 만에야 이뤘다. 경북 상주 화동, 포도밭 4,960여 제곱미터(1,500평)와 집 지을 동안 지낼 컨테이너 하나로 단출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한살림 포도 생산지인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고 첫해부터 감행한 친환경 포도농사. 쉬울 리 없었다. 무엇보다 베어도 베어도 되살아나는 풀의 무서운 기세 앞에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다. 거름을 얼마나 줘야 할지 몰랐고, 여느 농부들처럼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무와 풀, 땅과 계절을 알기까지 몇 해가 흘렀다. 귀농 11년차. 부부는 이제 포도밭에서 뭇 생명들의 치열한 삶을 본다. 매년 흥하고 또 쇠하기를 반복하는 풀과 벌레들, 그 틈바구니에서 포도가 더 알차게 영글어 간다는 것을 안다. “너무 편해도 포도가 맛이 없어요.” 해마다 속을 갉고 들어오는 애벌레들, 땅의 양분을 나누는 풀들. 생산자에게도 포도나무 에도 만만찮은 환경이지만, 부부는 묵묵히 때를 기다린다. 오늘보다 내일, 포도는 더 달고 맛있어질 것이다.

 

 

한살림연합 소식지 2015년 8월 (534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