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보감 – 정재만 생산자

자연의 색을 빚어내는 연금술사

 

천연염색 외길만을 고집해온 약초보감 정재만 대표의 기나긴 여정은 어느덧 20여 년을 훌쩍 넘어섰다. 섬유무역회사에 근무하던 평범한 직원에서 천연염색 전문가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게 된 것은 ‘가장 한국적인 아이템’인 천연염색의 경쟁력을 일찌감치 간파한 덕분이다. 천연염색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각종 천연재료를 가지고 직접 연구개발에 매달린 결과, 지금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천연염색 업체를 운영하는 독보적인 자리에 서 있다.

 

 

천연염색에 미치다
천연염색의 장점은 ‘환경’과 ‘건강’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다. 화학염색이 다량의 폐수를 발생하게 하는 것과 달리, 천연염색은 자연에서 색을 얻은 후 논밭에 뿌려 천연비료로 재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쑥, 황토, 밤토, 강황, 오배자, 도토리, 쪽, 부평초, 옥, 참숯 등 갖가지 천연염료가 지니고 있는 한방효과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회자되고 있다.
 
“천연염색으로 생산한 제품들은 촉감이 뛰어나고, 은은한 향이 후각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명도와 채도가 낮아 눈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유아복은 아이들이 물고 빨아도 될 정도로 안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오감만족을 실현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재만 대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실제로 천연염색 제품을 접해 보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차분하면서도 멋스러운 천연색상들. 화학염료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친근한 자연의 색이다. 일반 제품보다 훨씬 부드럽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촉감은 천연염료를 사용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약초보감만의 까다로운 원단 선택이 원인이기도 하다. 일부 소량을 제외하고는, 기존 원단을 구매하는 대신 천연염색에 적합한 면을 직조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약초보감(www.obang.net)은 수작업으로 극소량만 생산하던 전통 방식을 버리고 염색기를 도입함으로써 천연염색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 더 유명해졌다. 충북 진천에 설립한 염색공장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염색을 마친 원단들은 남양주시에 있는 본사의 봉제실로 옮겨져 완성품으로 거듭난다. 국내 최대 천연염색 전문업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일괄 생산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엔 지난 20여 년간 천연염색을 연구해온 정재만 대표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거에 비해 천연염색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화학염색과 비교해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품질 개발이 이루어졌죠.”
침구류를 비롯한 의류, 소품류 등 총 110여 가지에 달하는 친환경 제품들은 천연염색에 미쳐(?) 있는 정 대표와 약초보감 직원들의 합작품이다.

 

 

약초를 먹는 대신 입자
정재만 대표가 이루어낸 발상의 전환은 약초를 복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류나 침구류 등을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몸과 접촉하게 해서 동일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한약재로 속을 채운 천연베개, 이불, 앞치마, 손수건, 잠옷, 속옷, 생활한복 등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천연염료의 성분과 향이 피부와 코를 통해 몸속에 스며들기 때문에 인체에 이롭다고 한다. 최근 들어 부쩍 인기가 높아진 품목은 배냇저고리, 속싸개, 면 기저귀 같은 유아복이다. 면 재배부터 의류로 가공되기까지 화학약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흡수성과 항균성이 좋으며 예민한 아기 피부를 보호해 준다. 100% 순면에 참숯으로 천연염색한 생리대도 여성 고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신종인플루엔자의 영향으로 천연염색 마스크도 인기가 높다.
 
“천연염색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저희 회사도 급속히 성장해 왔습니다. 각각의 염색재료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살려 체질에 맞는 색상을 개발하고 있는데, 앞으로 디자인과 색상을 더 다양화할 계획입니다.”
 
약초보감의 제품들은 재구매율이 높은 편이다. 물론 품질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일일 테지만,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낮춘 것이 고객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품질과 가격 만족이 재구매로 이어지고 있는 것. 솔직히 ‘천연염색’, 혹은 ‘친환경’이라는 말이 붙으면 ‘비싸다’는 인식이 강해, 그만큼 구매 결정을 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약초보감은 일반 제품과의 가격 차이를 30% 이내로 줄여 고객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 40~50대 고객층이 주류를 이뤘지만 갈수록 연령층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수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사실 국내 진출보다 수출을 먼저 시작했을 만큼 정 대표는 해외시장에 관심이 많다. 3년 전 동경과 뉴욕에 지사를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다.
 
“회사를 설립할 당시 환경을 되찾고, 건강을 보호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유행이 아닌 우리나라의 고유한 색과 디자인, 기능성이 두드러지는 천연염색 제품을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마케팅 환경을 조성하고 싶습니다.”
 
약초보감은 오는 2011년 경기도에서 열리는 ‘세계유기농대회(Organic World Congress)’에 지정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 세계 유기농업 전문가들을 비롯해 약 40만 명이 방문할 예정인 이 대회에서 정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천연염색 기술을 전 세계인에게 선보일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진정한 슬로우 패션이란
“요즘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해요. 유기농 면, 닥(한지) 섬유, 옥수수 섬유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섬유로 만든 제품이 100% 환경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인체와 가장 밀착되는 표면에 화학염색이 돼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환경 섬유만큼은 절대적으로 천연염색을 해야 합니다.”
 
정 대표는 천연염색의 대중화와 인지도 향상을 앞당기기 위해서 천연염색부설연구소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연구소가 세워지고 나면 한층 체계적인 연구를 펼칠 생각이다. 이 역시 천연염색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꿈이 아닐는지.
 
천연염색 분야에서 확실한 아성을 구축한 정재만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슬로우 패션(Slow Fashion) 트렌드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새롭게 구상 중인 프로젝트는 쪽으로 천연염색 한 청바지를 보급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1년에 소비되는 청바지는 2억 벌 가량. 이를 위해 사용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학염료를 쪽으로 대체하면 양질의 친환경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추후 자연분해가 가능해 환경도 살릴 수 있고, 염료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도 고수익을 안겨줄 수 있어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내년에 쪽밭 10만여 평을 경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저희가 하는 일은 마치 농사를 짓는 것과 같아요. 농사지은 것을 입느냐, 먹느냐 차이일 뿐이죠. 농부의 마음으로 천연염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재만 대표가 입고 있는 밤토 빛깔 생활한복은, 누군가에겐 잘 영근 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흙내 나는 그 옷에서 농부의 땀과 정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의 정성과 자부심이 담긴 것이라면 기꺼이 나의 몸을, 그리고 내 가족의 건강을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이 싹트는 건, 그를 만나본 누구라도 품게 되는 마음일 것이다.

 

 
 
정재만 대표가 추천하는 천연염료들

  • 황토·밤토 : 정화 및 분해 능력으로 인체의 독성 물질을 해독
  • 쑥 : 따뜻한 성질이며 여성 건강 및 피로회복에 좋음
  • 쪽 : 향균성이 뛰어나 아토피와 같은 피부성 질환을 개선
  • 홍화 :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혈액순환을 촉진
  • 참숯 : 냄새 제거、 여과、 습도 조절 효과
  • 오배자 : 다량의 탄닌 성분으로 수렴、 항균작용
  • 부평초 : 열을 다스리며 항균、 진정작용으로 가려움증 개선
  • 옥 : 열을 내려 땀을 식히고 혈액순환을 촉진

 

살림이야기 제08호 (2010년 봄) 땅땅거리며 살다

글 윤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