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밥이 되는 사료 독립의 첫걸음

 

 

낙동강변에 포근하게 안긴 경북 의성의 쌍호마을. 이 마을에는 ‘쌍호공동체’라는 이름으로 30년 동안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일 년 내내 씨 뿌리고 거두는 농사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고향마을을 지키는 농사꾼들이다. 나이는 50대 중반에서부터 70살까지 다른 마을의 농민들과 다를 바 없다. 일곱 가구가 3만 평 정도의 농사를 지으니 우리나라 농가 평균 경작면적보다 조금 작은 편이다. 쌀농사를 주로 하고 지역 특성상 양파나 마늘을 심어 이모작을 한다. 한살림에 주로 쌀과 양파를 공급하지만 오랫동안 천주교 서울교구와 교류를 맺어 성당 직거래를 통해 배추와 무, 파, 참깨도 나눈다.
 
쌍호공동체는 1970년대 중반부터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시작한 뒤 줄곧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마을 어떻게 제대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 온 공동체이다. 1980년대까지는 농민 권익을 지켜내기 위해, 1990년대부터는 올바른 생명농업을 실현하려고 애써왔다.
 
쌍호공동체는 30년이 넘도록 매월 정해진 날이면 회원 모두가 마을 공소에 모여 어김없이 월례모임을 갖는다. 특별한 안건이 생기면 한 달에 몇 번이고 모여앉아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이를 통해 주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물론 남성 생산자뿐만 아니라 여성 생산자들도 똑같은 일원으로 참여한다. 여느 마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한살림과는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인연을 맺어왔다.
 
우리나라 농촌공동체운동을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쌍호공동체. 오랜 시간동안 농민운동을 통해 농업, 농촌문제를 고민하고 생명농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열망했던 쌍호공동체는 지금 우리 농업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엄청난 실험을 진행중이다. 이른 바 ‘지역자급축산’이다.
 
쌍호공동체 농민들은 천주교 서울교구 회원들이 마련해준 송아지 입식자금 350만 원으로 암송아지를 구입했다. 이 송아지가 어미 소가 되어 새끼를 두 번 낳을 때까지 기른다. 이때부터 일정기간동안 소를 살찌워서 적절한 중량이 되면 자신들에게 송아지를 사준 회원들에게 소를 잡아 쇠고기로 돌려준다. 물론 이들이 키우는 소들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마련된 것은 아니다. 도시회원들이 마련해준 송아지 입식기금으로 키우는 소도 있지만 그새 불어난 송아지도 키우고 형편이 허락하는 농가들은 직접 송아지를 사서 키우기도 한다.
 
도시와 힘을 합쳐 농민이 소를 사육하는 방식도 특이하지만, 이들은 일반 축산농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이나 그 부산물을 사료로 먹여 소를 키운다. 아직까지 100% 자신이 생산한 먹이만으로 소를 기를 수 없기에 부족한 양은 깻묵이나 쌀겨 등을 인근 지역에서 사다 쓰기도 한다. 그리고 소를 기르는 동안 생기는 소똥은 낙동강변에 지천으로 넘쳐나는 갈대나 잘게 부순 버드나무 등을 잘 섞어서 발효시킨 후 자신들이 경작하는 논밭으로 되돌려준다.
 
현재 쌍호공동체의 농가마다 많게는 7~8마리, 적게는 4~5마리 씩의 소를 키우고 있다. 이들 모두가 스스로 사료를 자급하거나 그렇게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부산물만으로 소를 키워야 하니 축산 규모는 더 이상 커지기도 어렵다. 많아봐야 10마리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마을 농가들의 뒤란에는 어김없이 솥단지가 아궁이에 걸려 있다. 배합사료 대신해서 쇠죽을 끓여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소에게 쇠죽을 끓여 먹이는 가장 큰 이유는 거친 농사부산물을 푹 익혀서 먹게 함으로써 소화흡수를 돕기 위해서다. 물론 일 년 내내 쇠죽을 끓여 먹이는 것은 아니다. 여름철에는 지천으로 널린 풀도 있고 상품성이 떨어져 소비자회원들에게 공급하기 어려운 배추나 무, 호박, 감자 등을 그냥 주기도 한다.
이들에게 왜 이런 방식의 축산을 고집하는지 물어보면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똥퇴비 얻을라꼬 키우는 거 아이가. 소농인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거는 자급하는 수밖에 없는 기라.”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소’라는 존재는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소는 우리 농업과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인력으로는 하기 버거운 논밭갈이를 대신하는가 하면,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운송수단이기도 했고 대처로 나간 자식들의 공부밑천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책보를 던져 놓기가 바쁘게 소를 몰고 나가 소꼴을 먹이거나 베어 와야 했다. 사료라고 해야 아침저녁으로 나오는 구정물에 볏짚이나 콩깍지를 썰어 넣고 쌀겨나 보릿겨를 한줌 넣어 끓인 쇠죽이 전부였다. 바쁜 농사철에 소에게 고된 농사일을 시킬라치면 통보리쌀이라도 한 됫박 넣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라져 버렸다. 예전처럼 농가마다 한두 마리씩 소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수십 마리, 수백 마리씩 대량으로 사육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설령 한두 마리씩 기르는 농가가 있더라도 소꼴을 베어 먹이는 수고로움보다는 배합사료를 사서 먹이는 편리함을 좆는 게 보통이다. 누구나 효율과 생산성을 먼저 따지는 세태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살림은 비록 일곱 농가밖에 되지 않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실천하지 않는 쌍호공동체의 축산방식에 대해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축산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순환축산이야말로 지구를 살리는 가까운 먹을거리
해마다 그 규모가 달라지고 있지만 2008년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육된 고기소는 한우와 육우를 합쳐 240만 마리 정도라고 한다. 이들 고기소가 지난 일 년 동안 먹어치운 곡물 사료는 어림잡아 보아 우리나라가 한 해 동안 생산하는 쌀 생산량과 맞먹다. 거기에다 젖소, 돼지, 닭이 먹은 사료까지 더하면 그 양은 실로 어마어마 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곡물 소비량의 45%이상이 사료로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 막대한 양의 사료곡물이 우리 땅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된 곡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27% 미만이다. 전통적인 농산물 수출국가가 아니더라도 식량자급률이 30%에 못 미치는 나라는 드물다. 가까운 일본은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으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오랜 전부터 말이다.
 
한살림음 요즘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운동은 특정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의 원료가 이동한 거리를 표시하고 그 이동거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수치로 환산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매일 식탁에 올리는 주요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을 고를 때 ‘가까운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지구 환경과 에너지 절약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자는 운동이다. 이는 지구를 살리는 착하고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모색과 성찰이기도 하다.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에서 도외시 할 수 없는 것이 축산 문제다. 18만 세대 한살림 회원들이 소비하고 있는 쇠고기의 사료를 지금처럼 미국산 수입곡물로 하던 것을 지역자급축산 방식으로 전환시킨다면 전체 18만 가구의 전등 1개씩을 하루 4시간씩 1년 동안 끄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매년 수입되는 쇠고기가 전체 쇠고기 소비량의 50%를 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수입사료와 수입고기를 모두 합산하면 자급축산은 영향은 배가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뿐이겠는가. 재작년부터 폭등하기 시작한 국제곡물가격은 지구촌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자국의 식량안보를 걱정하는 나라들은 곡물 수출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가 하면, 이 틈을 타 초국적 투기자본들은 곡물을 매점매석함으로써 세계 곡물시장가격을 더욱 교란시켰다. 이에 만성적인 식량 부족국가들에서는 밥과 빵을 달라는 소요사태마저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밀과 옥수수 등 대부분 곡물 가격이 올라 이를 원료로 하는 과자나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환율 폭등 역시 이를 더욱 부채질했고 서민들은 폭등하는 물가고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했다. 이런 여파로 사료가격 역시 종전보다 두 배가 넘게 뛰어올랐다. 이런 현상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살림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지역자급축산은 국내 곡물수입량 가운데 절대량을 차지하는 사료를 국내에서 자급함으로써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기후변화를 부채질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농촌은 이처럼 축산과 경종농업의 올바른 결합을 통해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이 되는 세상의 이치를 구현해 내는 현장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가족농과 소농이 튼튼히 뿌리내려 지속가능한 이 땅의 농업과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지역자급축산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밝힌 유기축산의 정의처럼 ‘생태계 보존을 위한 순환축산이어야 하고 이는 반드시 대지와 관련한 활동으로 가축분뇨의 리사이클링을 전제하는 축산’과도 그 의미가 같다. 지역순환, 자원순환의 생명농업 원리가 고스란히 담긴 축산 말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은 40년 전《강아지 똥》이라는 동화를 통해 보잘 것 없는 강아지 똥이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임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참담할 지경으로 망가지고 있는 우리 농업과 농촌의 현실에서 하찮은 소똥이 어떻게 식량의 자급의 원천이 되는지, 생명의 순환원리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모두가 함께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들레가 아름다운 별이 되기 위해서는 강아지 똥이 간절히 필요했듯 우리 농업에도 지역자급축산과 같은 새로운 축산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아름다운 쌍호공동체를 통해 그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다.

 

 

살림이야기 제05호 (2009년 여름) 땅땅거리며 살다

글 배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