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벗 – 이지은 생산자

바른 먹을거리에서 출발한 아름다움의 철학

 

자연의 벗 이지은 대표는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해 세상에 진지하게 말을 건네고 싶어 한다. 외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생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말한다. 화장품으로 참된 아름다움에 대해 말을 하고 싶을 뿐, 이윤을 통한 기업의 성장에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누가 봐도 예쁜 여배우가, 사실 본인은 빼어나게 예쁘지 않은 얼굴이라며 맑고 투명한 피부를 강조하는 텔레비전 화장품 광고가 있다. 그 제품 때문에 영업사원들이 일하기 편안해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사모님께 전해 달라’는 한마디면 어느 집이든 취향 불문하고 좋아해서 값비싼 식사 접대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나. 이처럼 화장품은 유명 여배우 얼굴을 내세우거나 낯선 외국 이름이라도 달아줘야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시장의 반응이다.
그런데 무슨 화장품의 이름이 큰새암, 옹달샘, 참이슬, 꽃구름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화장품은 손도 대지 않는다는 마니아들이 많은 화장품이 있다. 특히 피부가 민감해 작은 자극에도 트러블이 생긴다는 까다로운 여성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한 ‘쌩얼’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자연의 벗(www.nature.or.kr)’. 따지고 보면 최근 자연주의 열풍에 대세를 이루고 있는 천연화장품의 원조인 셈이다. 자연의 벗이란 화장품으로 깐깐한 소비자들의 벗이 된 사람을 만나보았다.

 

그 얼굴 참으로 맑다

이지은, 요즘 젊은 세대에 흔한 그의 이름만 듣고 대충 나이를 짐작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1949년생으로 올해 나이 환갑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 수도자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긴 생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은 얼굴에는 마음공부를 오래 한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있었다.
일반 화장품 시장에서조차 천연화장품이 대세인 요즘, ‘자연의 벗의 매출은 높아졌는지, 이름과 디자인을 세련되게 해 사업을 확장시킬 생각은 없는지, 작년 대비 몇 퍼센트의 매출 신장이 있었는지’ 하는 식상한 질문일랑 접어두기로 했다. 사업가가 아니라 도인에 가까운 그이의 풍모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다만 십 년 전과 똑같은 화장품 가격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많이 팔리니 가격을 높일 필요가 없지요.”
단순명쾌한 대답이다. 덧붙여 ‘욕망은 채울수록 허허롭다’고 하니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그는 화장품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좋은 화장품을 많이 팔아 세계적인 기업을 만든다거나, 단순히 건강한 피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해 세상에 진지하게 말을 건네고 싶어 한다. 외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생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말한다. 화장품으로 참된 아름다움에 대해 말을 하고 싶을 뿐, 이윤을 통한 기업의 성장 같은 것에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지은 씨는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았다. 때문에 늘 피부 트러블로 고생을 했고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기침감기를 달고 살았다. 스물다섯 한창나이에 폐결핵으로 누워 지내야 했던 시간도 길었다. 자신의 이십대는 ‘약에 융단폭격’ 맞았던 시간이라고까지 회상할 정도다. 덕분에 약으로 병을 고치려고 하면 오히려 다른 여러 장기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몸 전체를 보호하고 면역력을 키워내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장기가 망가지는 것을 간과하는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이는 질병과 인간의 삶에 대한 뼈저린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읽었던 노자(老子)의 책에서 ‘자연에 모든 이치가 들어있다’는 말에서 그는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았다. 결국 생활 전반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것을 찾아보자는 결심은 뜻 맞는 사람들과 ‘푸른건강실천회’라는 모임을 만드는 일로 이어졌다.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유해식품을 추방하자는 운동을 시작했는데, 지금이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시절에는 식품 공해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그러나 그는 개인적인 각성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한평생 살아봐야 기껏 100년인데,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것이 그가 자연의 벗과 함께 지금껏 버텨 온 힘이었다.
“유해식품 추방운동을 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한 가정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부들의 얼굴이 자연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연에 가까운 좋은 먹을거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화려한 색조 화장으로 죽어가는 얼굴들을 만난 것이다. 그는 천연 먹을거리만으로도 고운 피부를 가꿀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고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을 먹는다고 해도 화학성분으로 범벅이 화장품으로 얼굴을 가린다면 모든 노력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먹을거리 뿐 아니라 피부에도 ‘자연스러운 바를 거리’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그가 천연성분 화장품 개발을 시작하게 된 순수한 동기였다.

 

몸의 소리를 듣는 명상에서부터 출발한 천연 화장품

일단 ‘천연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의 전환은 이루어졌지만, 현실에서 화학물질을 대체할 것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물질이 아니라 우선 명상에서부터 답을 찾기로 결심했다. 평소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의 느낌에 집중하면서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피부가 가장 편안할까,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열어 고요히 자신의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몸이 원하는 것은 피부를 자연 그대로 숨 쉬게 하는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해답이 나왔다.

 

 

당시 시중에는 한방 화장품 붐이 일었는데, 그는 약재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좋은 화장품의 재료는 특수한 약재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 생활 주변의 식품 속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상들이 사용한 전통방식의 화장품을 생각하고, 고대부터 미용재료로 써온 자연물질들을 조사했다. 보리쌀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 나물 데친 물을 뒷물로 쓰는 것, 취나물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등 어릴 적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보고 배운 것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달맞이유, 원추리, 쑥, 천연토코페롤,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색소 등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화장품이 탄생했다. 그가 만든 것은 맹물로만 씻어내도 90% 이상 말끔히 닦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전한 화장품이었다. 믿음직한 진짜 피부의 벗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오랜 연구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귀한 물건이었지만, 이지은 씨는 처음부터 제품으로 ‘팔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화장품을 공부했던 ‘한국자연미용법 연구회’ 사람들과 나눠 쓰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여러 사람들이 써보고,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결국 자연스럽게 지금과 같은 유통구조가 생기면서 ‘자연의 벗’이란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결국 ‘자연의 벗’은 천연성분을 내건 일반 화장품 회사와는 탄생 배경부터 달랐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1994년도부터 변함이 없는 화장품 가격은 갈수록 올라가는 원재료 값을 감안한다면 수익을 얘기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기까지 하다.

 

어떻게 하면 피부가 가장 편안할까,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열어 고요히 자신의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몸이 원하는 것은 피부를 자연 그대로 숨 쉬게 하는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해답이 나왔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들의 초심은 변함이 없는데 오히려 소비자가 늘다 보니 불만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였다. 화장품의 흡수가 늦거나, 향이 없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항의를 비롯해 용기 모양이 촌스럽다는 불만까지 요구가 다양해졌다. 그러나 화학성분을 조금만 넣으면 흡수가 잘 될 것이고, 향이 좋아지는 것 역시 성분을 바꾸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라고 한다. 그는 이런 지적들에 대해 ‘못해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화장품을 겉모양이나 향, 질감으로 다가가고자 하면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지은 씨는 결국 그런 소소한 불만은 그대로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하니 그를 화장품 사업가로 볼 수가 없는 일이다.
그는 오히려 ‘앞으로도 자연의 벗 화장품은 계속해서 불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용기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이야기도 계속 듣는 것이지만 그것은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문제’라고 했다. 투박한 뚝배기의 맛처럼, 겉모양보다는 그 안에 담긴 소중한 뜻을 그대로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새로운 소비자들은 기존에 없던 기능들을 많이 요구하고 새로운 제품을 바라고 있지만, 그는 처음에 나온 9~10가지 제품만으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그것을 채우는 일을 계속 도와준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얼굴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 그의 철학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생각이 아름다운 얼굴을 만든다’는 그의 아름다운 고집이다. 그것이 자연을 닮은 화장품을 만드는 이지은 씨가 진정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살림이야기 제04호 (2009년 봄) 땅땅거리며 살다

글 이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