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생산자연합회 – 최락현 생산자

땅 위에 꾹꾹 눌러 쓴 세월의 지혜

 

희끗희끗 반백의 어르신이 볼펜을 잡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다. 그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논과 밭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투박하고 단순하지만 10년 동안 매일매일 놓치지 않고 써 내려간 영농일지가 벌써 수십 권. 그 진심과 성실이 얼굴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아산생산자연합회 최락현 생산자를 만났다.

 

 
 

농사는 언제부터 지으셨나요?

부모님 도와 초등학생 때부터 했지요. 우리 세대는 바쁘면 학교 가기도 어려웠어요. 이곳 덕암리에서 4대째 이어 벼농사를 지으며 살았어 요. 스물에 결혼하고, 서울로 가 직장생활을 하려고 했지만 아버님이 말리는 바람에 평생 농부가 됐지요. 후회는 안 해요. 안식구가 안 도와줬으면 여태까지 못했을 거예요.

 

한살림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10여 년 전쯤 아산의 초기 한살림생산자인 이호열, 김병칠 이 친구들이 찾아와 친환경 농업, 고 박재일 전 회장, 소득안정, 농업 살리기를 이야기하며 설득했어요. 처음에는 유기농업을 하려면 3년 동안 농약이나 제초제를 하지 않아야 필지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수입이 생길 것인가로 농민들이 많이 흔들렸어요.

 

한살림을 늦게 시작하셨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힘든 거야 많죠. 약을 안 치고 일일이 다 사람이 해야 하니까요. 초기엔 친환경제제를 사용하는 방법이 서툴러 현미식초를 잘못 사용하기도 하고, 볍씨소독을 하는 온탕법을 하다 너무 삶기도 했어요. 그래도 확실히 땅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요. 저기 관행농하는 논둑에는 제초제를 뿌려 푸른 싹이 날 수가 없어 빨갛잖아요. 흙만 보여요. 그러면 힘이 없어서 비가 오면 금세 논둑이 무너져 버리게 되거든요. 하지만 내 논에서는 우렁이들이 열심히 일하잖아요.

 

 

 

영농일지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5년 한살림을 시작하면서부터 썼어요. 친환경농사 인증심사를 받으려면 영농일지를 써야 한다고 해서 적어 가긴 했는데 재미가 생겼어요. 영농일지랄 것도 없고  그냥 하루의 기록이지요. 그래도 평생을 해 왔더니 이젠 안 쓰면 뭔가 허전해요. 외국에 나가서도 메모지에 적어 놓았다가 다시 베껴 놓을 정도가 됐어요. 지금 보니 초창기 한살림을 선택하게 된 과정이나 친환경농사를 위해 회의했던 과정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아쉽네요.

 

10년 동안 매일 영농일지를 써온 힘은 뭔가요?

3년치를 한 번에 볼 수 있고 비교할 수 있어 농 사에 도움이 많이 되지요. 오십 평생 농사를 지었어도 작년 농사를 올해 잊어버려 다시 찾아 보기도 해요. 농사법이 그럽디다. 똑같이 해도 14년도는 풍작, 13년도는 흉작이에요. 날씨도 그렇고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가 봐요. ‘우리 할아버지는 소리 나는 대로 써요’ ‘받침이 다 틀려 요’ ‘왜 그렇게 써요?’ 하면서 놀려대던 손자들도 제 영향을 받아서인지 매일매일 일기를 잘 쓴다고 하네요.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답니다. 벼농사를 짓는 농부로서 어떠신지요?

안타깝죠. 그러잖아도 지난 4월에 ‘쌀소비 촉진 행사’로 저희 아산 도고지회 회원들이 서울 금호매장에 갔다 왔어요. 주먹밥도 만들어서 나눠 먹고, 조합원들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친환경농사가 맞느냐? 진짜냐?’고 묻는 조합원이 있어 당황했어요. 생산자로서 그건 너무나 당연한데 그런 질문을 받아서 생산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죠. 요즘 먹을거리가 너무 많아요. 피자니 하는 것도 쌀 값보다 비싸잖아요. 쌀로 만든 간식이나 가공품 개발이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세요?

나이도 있고 뭐 이제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하겠어요. 그저 지금까지 하던 농사를 힘 있을 때까지 잘하는 것밖에….

 

문득 영농일지의 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해가 뜨기 전, 해가 진 후 움직이는 비둘기의 특성을 몸으로 터득한 농부의 경험치와, 고단함을 마다치 않고 당연히 콩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직과 성실로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이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한살림연합 소식지 2015년 7월 (531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ㆍ사진 석보경 (생산자연합회 사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