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참솔공동체 – 김순복 생산자

태어나 가장 잘한 일  농사,

다시 꿈꾸며 설레는 일  그림

 

 

“내 그림이 뭐시 좋다구~ 그냥 그리는 거구만!” 여전히 본인의 그림이 부끄럽다고 하는 그지만, 한 달에 한 번 소식지에 연재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애써 포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따듯한 진심이 전해진다. 40여 년 만에 다시 꺼낸 자신의 꿈덕에 농사도 더 행복하게 짓는다는 <생산지에서 보낸 그림편지>의 필자 김순복 생산자를 만났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셨나요?

여섯 살 연필을 쥘 때부터 그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종이가 보이는 대로 무조건 그렸다고 하더라고요. 초등학교 다닐 때 미술대회 상을 많이 탔는데 부모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여자는 시집가서 살림만 잘하면 된다고 돈 많이 드는 미술공부는 하지 말라고 하셔서 중단한 채 이제껏 살아왔지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제가 지금 58살인데, 2014년 겨울에 딸들이 작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선물로 보내 왔어요. 사용하기 쉬운 색연필로 다시 선을 긋고 색을 칠하며 저만의 그림을 그리는 행복을 다시 찾았죠.

 
그림 소재나 영감을 어떻게 받으시나요?

멋진 풍경이라 해도 사람이 있지 않으면 허전한 느낌을 받아요. 사람이 있을 때 조화롭죠. 특히 농부의 모습은 자연과 잘 어울려요.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좋은 소재랍니다. 오랜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며 자연스러운 사람의 동작을 그리기가 쉽지 않아서 지역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거나 내가 직접 찍은 사진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 응용하고 있어요.

 
농사일도 바쁘신데 언제 그리시나요?

낮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는 없어요. 농사일에 바쁘니까요. 저녁밥 먹고 영농일지 쓰고 잠자리에 들기 전 그리는 거죠. 작은 종이에 그리기 시작하면 잠들기 전에 완성할 수 있어요. 아직은 연습이라 생각하고요. 아마 큰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다면 부담스러워지겠죠.

 

 

 

생활이 모두 그림으로 표현되는군요, 그럼 한살림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고향은 충북 청주고, 결혼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와 살았어요. 경치가 수려하고 겨울에 따뜻한 해남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20여 년간 관행 농사를 짓다가 유기농에 관심을 두었고 해남 참솔공동체에 가입하고 한살림 생산자가 된 지 이제 9년 차입니다.

 
어떤 작물을 키우세요?

단호박, 늙은호박, 양파, 대파, 배추 등 해남 지역의 특성에 맞는 농산물을 철 따라 지어요.

 
농사지으면서 잘 했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인가요?

농사짓는 일은 가장 보람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창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모험 같기도 하고요. 씨앗을 심어 싹이 틀 때 매번 감동해요. 한살림 로고가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의 모습이잖아요. 잎과 줄기가 자라 열매 맺는 동안 물 주고 풀을 뽑아 주며 세상천지에 내 것인 작물을 키우죠. 농사가 잘되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데요. 예전에 직장에 다니며 월급도 받아 봤는데 보람이 다릅니다.

 
그래도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으셨을 텐데, 어떻게 넘기셨나요?

뭣을 심던지 풀이 먼저 나와 기승이고 벌레와 산짐승들이 먹잇감인 줄 알고 달려들어요. 대파를 심어 놓았는데 벌레가 줄기를 잘라 놓고 도망가요. 겨울에 추워서 양파 모가 얼어 죽더니 봄이 되니까 비가 많이 와서 못 견디고 안개가 끼는 날이 계속되니 노균병에 걸려 말라죽는 식이죠. 또 풀은 얼마나 많고 빨리 크는지. 그나마 양파 한 개라도 건지려고 농부는 고생이 고생인 줄도 모르고 일하는 거예요. 이런 점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은 자연의 힘 앞에 사람이 한계를 느끼며 겸손해지는 거예요. 위대한 자연의 힘 앞에 순응하며 열심히 하늘의 뜻에 따라 살다 보면 결실의 날들이 오고 열심히 일한 농부는 소득의 기쁨을 얻어요. 사계절 내내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농촌생활, 어려운 일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넘기면 편 안한 때도 돌아오고 하더군요.

 
이루고 싶은 꿈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힘들 때나 절망스러울 때 저를 지켜준 것은 그림책의 저자가 되겠다는 꿈이었어요. 삶에서 만나는 기쁨이나 어려운 상황을 지나면서 “아! 이건 인생을 체험하는 거야. 어떻게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야 할까?” 생각만 해왔어요.

 

 

  

 

 

농사일이 전부일 것 같은 생산자에게 또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이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모두 각자의 재능과 꿈이 있는 것이리라. 김순복 생산자를 만나고 꿈을 찾고 도전하는 때가 늦었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배운다. 마음속에 소망의 씨앗을 놓지 않고 살아온 김순복 생산자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한살림연합 소식지 2015년 8월 (533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ㆍ사진 진재호 (전남권역 사무국장)